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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야생의 땅 밤섬 이야기

by 아네모네(한향순) 2019. 11. 25.

 

 

 

야생의 땅, 밤섬이야기

 

                                                                                                                                             한 향 순

 

섬이 밤처럼 생겼다하여 이름 붙여진 밤섬은 오십여 년 전. 여의도의 한강개발 사업에 따라 폭파되었다.

밤섬에는 그때까지 62세대 443명이 살면서 고기잡이와 조선업, 약초 재배나 가축을 길렀으나

여의도 개발 때 모두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자락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밤섬은 지금도 마포구 창전동에 속하며, 서강대교가 관통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섬의 총면적은 24만여이지만 퇴적물에 의하여 섬의 면적이 매년 커지고 있다고 한다.

마포팔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뛰어난 풍광을 자랑했던 밤섬에서 살던 실향민들에게 일 년에 한번,

고향땅을 밟게 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실향민들이 옛 삶터를 방문하여 고향에 대한 애틋함과 아쉬움을 달래고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마포구의 이번 행사를 따라 출입이 엄격하게 규제된 밤섬을 동행하게 되었다.

망원동 한강선착장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바지선에 타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사람의 발길이 오래 닿지 않은 외딴섬은 야생의 땅처럼 온갖 종류의 수풀과 버드나무가 원시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율도명사(栗島明沙)로 불리는 밤섬의 강모래 벌판이 사라지게 된 것은 서울시가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잡석 채취를 하고,

한강을 넓혀 물길을 순조롭게 한다고 돌산으로 된 밤섬을 폭파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밤섬의 대부분은 없어지고 섬 중심부가 집중적으로 파헤쳐져 위 밤섬과 아래 밤섬으로 나누어졌다.

요즘의 밤섬은 물기에 강한 버드나무와 억새 같은 습지식물들이 번성했고 자연스럽게 서울 한복판의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또한 대도시 한가운데 있는 습지이자 철새도래지라는 것, 덕분에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습지로 보호받고 있다

 

 

 

 

우리가 밤섬에 도착하니 일부 실향민들이 먼저 와서 과일과 돼지머리등 제를 지낼 상을 성대하게 차려놓고

귀향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오십여 년 전, 옛 주민들이 살던 생활터전을 찾아

간단한 예를 올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실향민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그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고향의 흔적을 찾아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은 거의 희귀 성을 가진 서민층이었다.

 

 

 

500여 년 전, 조선의 한양 천도와 함께 배 만드는 기술자들이 처음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마포 항이 번성하면서 고유의 황포돛배 제조업이 발달했다.

더불어 배짓기 과정에서 유래된 '마포나루배 진수놀이'라는 독특한 전통문화도 간직해왔다.

주류사회와는 약간 동떨어진 사람들이 주로 배 만드는 일을 하며

자신들만의 부락을 이루며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1940년에 밤섬에서 태어나 68년까지 살았다는 어느 분은 당시에는 한강물을 먹고 살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로 생활했다. 한 여름에는 넓은 백사장에서 놀기도 하고,

추운 겨울 한강이 얼면 배가 다닐 수 없어서 섬 밖을 나가지 못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드디어 귀향제가 시작되어 개회식에 이어 이 행사를 추진한 기관장들의 인사말이 끝나자,

실향민들이 분향명촉, 초헌, 아헌, 종헌 등의 순으로 귀향 제례를 올렸다.

 

 

 

 

 

 

1부 행사가 끝나고 나니 다음 순서로 밤섬 도당굿을 시작했다.

 

도당굿은 마을의 태평과 풍요를 목적으로 행하는 마을 굿의 하나이다. 밤섬은 고려시대 유배지였다고 하는데,

섬 어귀 바위언덕에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이 있어 해마다 굿을 해왔다. 밤섬이 폭파된 후,

60여세대가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 이주한 뒤에도 제일 먼저 부군당을 짓고 도당굿을 이어왔다.

그리고 2005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보존 전승되고 있다.

흩어진 마을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밤섬 시절부터 수백 년 간 이어온 도당굿이다.

와우산 중턱으로 옮긴 부군당에서 매년 12일에 하는 굿은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복을 비는 연례행사이다.

 

 

 

 

 

밤섬에는 물에 강한 버드나무 군락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인위적으로 심은 것이 아니라,

강물에 실려 내려온 버드나무 씨앗이 스스로 싹을 틔워내 자라났다고 한다.

일부러 식물의 다양성을 위해 여러 가지 수종을 심기도 했지만,

홍수로 섬이 물에 잠기는 일이 많아 물에 취약한 수종은 살아남지 못하고 버드나무 만 살았다고 한다.

문득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 이후, 자기의 힘으로 복원해 낸 밤섬과 자연의 회복력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대로 섬이 자정능력으로 스스로를 복원해 나간다면, 수년 내에 원상태로 돌아온 밤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행복한 기대감을 가져본다.

 

 

 

 

 

 

 

2019년 11,12 월호 < 여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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