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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손의 표정

by 아네모네(한향순) 2019. 11. 25.



                  2019년 11,12 그린에세이 < 손의 표정>




손의 표정

    

                                                                                                                                                                                     한 향 순


명치끝에 깍지를 끼어 맞잡은 두 손은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뭉툭한 손가락에는 마디마다 매듭이 지고 온통 주름투성이의 손은

노동의 흔적과 살아온 오랜 연륜을 말해주듯 아주 고단해 보였다.

그 옆에 단호하게 꽉 쥔 주먹은 어떤 힘과 결단력, 그리고 허물 수 없는 불굴의 의지가 느껴졌다.

어느 날 전시회에 갔다가 손을 소재로 한 사진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얼굴도 아닌 손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 상황과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위의 두 사진 중에서 서로 맞잡은 손은 <메리 앨런 마크>라는 작가가 테레사 수녀의 손을 찍은 작품으로

어떤 고행도 마다않고 사랑과 봉사로 살아온 수녀님의 일생이 보이는 듯 했다.

그 옆의 사진은 <리처드 이베든>이 권투 선수 조 루이스의 주먹을 찍은 사진으로

승부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힘과 용기가 손의 모습에서 저절로 느껴졌다.

그 외에 사진작품으로는 유명한 골무를 낀 손이라든가 앤디 워홀이 자신의 손을 찍어 자화상이란 제목을 붙여 놓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를 열게 한 <헨리 불>이라는 사람이 왜 하필 손에 관한 작품만 16년 동안이나 사 모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손도 사람의 얼굴 못지않게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다.

흔히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손에도 여러 가지 표정이 있어 사진으로 나타난 형상을 보고 그 이면의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된다.

더구나 사진 찍는 것에 빠져 어떤 표현을 해야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까 하고 고심을 하던 중이어서

그 사진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말이나 글은 인물이나 상황을 표현하는데 긴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진은 단 한 장에 그때의 모든 상황을 압축시켜서 상대방에게 전달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우연히 얻어지는 작품보다는 치밀한 계획과 준비 후에 촬영을 해야만 좋은 작품을 얻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쓴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고심과 퇴고 끝에 태어나는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나에게도 손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귀한 사진이 한 장 있다.

오래 전에 남편이 성당에서 교리를 끝내고 영세를 받던 날, 우리 부부도 혼배성사를 올렸다.

그때 우리가 두 손을 맞잡고 혼인 서약을 하던 중, 어느 지인이 두 손만 클로즈업해서 찍어 준 것이다.

그 사진을 보면 긴 설명도 필요 없이 뭉클한 감동이 밀려온다. 뭉툭하고 못생겼지만

,,,락을 겪으며 사십 여 년을 함께한 동지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방금 보고 온 전시회 생각에 골몰하다가 물끄러미 내손을 내려다본다.

사십여 년 동안 주부로 살아왔으니 곱거나 예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언감생심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남에게 혐오감을 줄 정도는 아니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내 손에 머물라치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손을 뒤로 감춘다.

것은 내손이 남에게 내보이기 싫을 만큼 험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유별나게 험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별다르게 고생을 하지도 않았다.

우리 몸의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손의 역할은 수없이 많다.

 주부이니 젊을 때는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에서 부터 글을 쓰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일을 손이 대신해준다.

그래서 손은 우리 뇌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손은 말없는 얼굴이라고도 한다. 얼굴이나 손의 모습은 한사람이 살아온 날의 궤적을 보여준다.

또한 얼굴과 손은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며 어떤 주장이나 강요도 없이 그 사람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

내 못난 손을 보며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어떤 상상을 할지 몹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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