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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살풀이 춤

by 아네모네(한향순) 2021. 8. 7.

 

살풀이 춤

 

                                                                                한 향 순

 

해가 뜨기 전, 벌판은 희뿌연 안개 속에 갇혀 있다.

넓은 초지가 끝없이 이어진 야생의 벌판에서

슬픈 가락에 맞춰 한 여인이 춤을 추고 있다.

 

하얀 한복을 입은 여인은 희고 긴 수건을 치켜들고 있다.

가락은 천천히 애조를 띠며 흐르다가

어느 순간 숨차게 고조를 이루더니

다시 흐느끼듯 느린 가락으로 이어진다.

 

여인의 맺고 푸는 춤사위가 계속되면서 하늘과 땅의 기()를 모으고 있다.

느리지만 강인하게, 부드럽고 섬세하게 한 사위 한 사위 빚어가면서

()을 풀고 맺힌 살을 풀어 나쁜 기운의 사슬을 풀어나간다.

 

살풀이춤은 맺고 풀음을 통해 한을 승화시키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내적으로 강하게 표출하는 춤사위이다.

살풀이는 '(), 맺힌 것 또는 얽매인 것을 풀어낸다는 뜻으로

우리민족의 오랜 무속신앙에서 유래되었다.

 

아팠던 마음들이여 가고, 불쌍한 혼백들이여 안식을 취하시게.

나쁜 기운은 사라지고 살아 있는 것들이여 새 기운을 회복하라.

붉은 해는 어느덧 벌판위로 서서히 떠오르고

그녀의 춤은 춤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드리는 기도가 된다.

 

 

            

 

                                                          2021년 8월 <좋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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