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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전설속에 묻힐 갈대의 섬

by 아네모네(한향순) 2021. 11. 13.

 

전설 속에 묻힐 갈대의 섬

 

                                                                                                             한 향 순

 

스산한 바람 따라 어디든 가고 싶은 계절이다. 바람이 아무 거리낌 없이

나무를 흔들고 갈대를 마구 헤집어 놓아도 흔적이 남지 않는 외로운 땅이 있다.

한국의 세렝게티라고 부르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수섬과 형도이다.

그곳에서 몇 해 동안 촬영을 하느라 장엄하게 이글거리는 일출도 만났었고

온몸을 태우며 스러져가는 일몰도 보던 곳이다.

거친 바람을 맞으며 하루 종일 늪지를 쏘다니다 보면 가끔은 고라니나 야생동물들도 만나고

발이 늪지에 빠지기도 하지만, 메마른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몸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고마운 야생의 땅이기도 하다.

 

 

수섬과 형도는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바다와 섬이 육지로 변한 넓은 들판에

들풀과 함초가 끝없이 펼쳐져있는 곳이다. 한때는 고깃배가 들어오고 갯벌에서 조개를 줍던 섬이었지만

이제는 버려진 야생의 땅에서 송산그린씨티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흔적마저 사라지게 될 곳이다.

그곳에 가면 아직까지 소금기가 남아있는 조개나 바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시화호가 바다였을 때 형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섬, 지금은 물이 빠지면서

육지가 된 지형인데 돌을 파내느라 가운데가 움푹 드러난 형도와 넓은 초원이 된 수섬은

이제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땅이 될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많은 바다가 육지로 변하고 산이 무너져 채석장으로 바뀌어도 사람들은

더 넓은 땅을 얻기 위해 애쓸지 모른다. 그리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수섬과 저울 섬 형도의 이야기도,

그곳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던 사람들의 모습들도 곧 망각 속에 묻힐 것이다.

 

 

햇빛을 받아 은빛 물결처럼 출렁이는 갈대밭에는 적요가 감돈다.

갈대는 미미한 바람소리에도 몸을 뒤척이고 작은 새의 날개 짓에도 함부로 흔들린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고 바람 부는 대로 쓰러지는 갈대를 보며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항상 위태롭고 조마조마한 생()의 강을 건너며 흔들려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또한 절망에 쓰러져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다. 사색에 젖기 좋은 계절, 하루쯤 은빛 갈대밭을 거닐며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의 행보를 멈추고 마음의 휴식을 주어본다

 

 

 

                    

                                                      2021년 <그린에세이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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