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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밥을 함께 먹는일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8. 8.

밥을 함께 먹는 일

 

  오랜만에 친구네 부부와 같이 산행을 하고 식사를 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취미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운동이나 식성도 비슷하여 우리 부부와 자주 어울리던 친구였는데, 나이가 들고 사는 것이 시들해지자 점점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어 버렸다.

 

  멀리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한번 만나서 밥이라도 먹자.”라고 해 놓고도 깜빡 잊어버리거나 서로 바빠서 실천을 못할 때가 많았다. 오랜만에 산행을 하면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여서인지 반주를 곁들인 식사는 꿀맛 같았고, 우리는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젊은 시절 친구는 욕심이 많아 겨울이면 뺨이 빨개지도록 오들오들 떨면서도 같이 스키를 즐기던 일이며, 여름이면 골프를 좋아하던 친구부부와 오뉴월 염천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루 종일 운동을 하던 일등.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 옛날이야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를 흉허물 없이 터놓고 나니, 가끔이라도 이런 시간을 만들지 못하고 왜 각박한 생활을 했던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며칠 전에 내가 속해 있는 문학단체에서 “연암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문학기행을 한 적이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 그의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 열하까지 가보는 여행이었다. 물론 수필을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과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한 여행이라 더욱 즐거웠지만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의 작가이신 K선생의 강의를 들으며 한 여행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선생의 여러 강의 중에 유난히 내 가슴에 와 닿던 대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친구를 많이 만들라는 이야기였다. 물질적인 노후대책도 필요하지만 친구가 많이 있어야 쓸쓸하지 않는 행복한 노후가 된다고 했다. 그런 말이야 전부터 흔히 들어왔고 이미 알고 있는 진부한 내용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생은 막연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우선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자주 밥을 같이 먹고 웃음을 나누라고 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일은 아주 쉽고 간단한 것 같지만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식성도 다를뿐더러 선뜻 남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자면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반드시 진수성찬의 훌륭한 식사를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우리가 다른 곳에 소비하며 사는 비용 보다는 밥값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선생의 지론이었다. 듣고 보니 정말 사람과 사람사이는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정이 들고 마음을 열게 되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던 날 밤, 나는 늦도록 남편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생활형편은 윤택하지도 못하고, 겨우 힘든 터널을 벗어난 정도이지만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는 일에는 인색하지 말자고 남편과 약속을 했다. 8년 전 우리부부가 암흑 같은 벼랑으로 떨어졌을 때,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가족과 많은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다시 웃을 수 있으며 건강을 지탱할 수 있었겠나 생각하면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팔십 평생 시골에서만 살아오신 어머니는 밥 이야기만 나오면 눈가가 축축해지신다. 객지에 나가있던 아들들이 방학이라도 하여 집에 올 때면, 멀리서 가물가물 아들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아궁이에 불부터 지피셨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상을 내오는 것이 아들에 대한 유일한 사랑과 반가움의 표시였다고 한다. 또한 시골에서 달리 대접할 간식이 귀하던 때이기도 했지만, 어떠한 손님이 들려도 꼭 밥을 지어 먹여 보내야만 손님에 대한 도리였다고 하신다.

 

  이제는 세상도 많이 바뀌어 집에서 밥을 하여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점점 드물어졌다. 막역한 사이가 아니면 모든 대소사를 그저 밖에서 만나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으로 땜질하곤 한다. 세태가 그렇게 변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밥을 함께 먹으면서 정을 나누는 풍습은 여전 한 것 같다.

 

  옛말에 “마음을 열면 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는 것이 허전하고 외로울 때, 누구라도 불러서 함께 밥을 먹다보면 마음의 허기도 조금은 채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0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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