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모음/수필집(불씨)

여백의 의미

by 아네모네(한향순) 2009. 8. 8.

여백의 의미

 

  미처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잠을 설쳐가며 일찍 길을 나선 것은 문우들과 함께 광주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를 보러 가기 위해서이다. 첫해에도 벼르기만 하다가 기회를 놓쳐서 아쉬웠는데 막상 차가 출발을 하게 되니 마음이 설레었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서서히 동이 트면서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가을 산의 모습이 늦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문우들과 정담을 나누며 정신없이 웃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빨리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에 계신 선생님들께서 마중을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미리 사전 답사까지 하셨다는 두 분의 배려로 우리는 갈팡질팡하지 않고 바로 관람에 들어갔다.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미술관을 돌아본 뒤 일행은 서둘러 본 전시관을 향했다.

올해 97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는 ‘지구의 여백’이라고 들었다.

 

  지금 지구촌에는 자연의 생태계나 인간의 삶이 심각한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래서 현대적인 구조 속에서 속박당하고 있는 인간이나, 기존의 가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취지인 것 같다. 지구촌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에서 틈과 여백을 만들고, 인간이 모든 만물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미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그저 좋은 작품을 보면서 미술과 친숙해지기를 바라며, 다만 작가의 의중을 이해하려고 애쓸 뿐이다. 본 전시관에는 다섯 가지의 소주제를 가지고 나누어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물과 속도’ ‘불과 공간’ ‘나무와 혼성’ ‘쇠와 권력’ 그리고 ‘흙과 생성’ 이었다. 이런 설정은 여백(Unmapp-ing)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인간 스스로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성찰의 의미로 꾸며졌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여백이란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 어느 집에 갔을 때 집안에 가구나 장식품들이 잔뜩 채워져 있어 몹시 답답함을 느끼게 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값비싸고 좋은 물건이라도 그것이 지나치게 많이 있을 때는 사람이 편히 쉬는 집이라는 생각보다는 물건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 같아서 사람이 물질에 위압당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똑똑하거나 지식이 많아서 자기의 생각이 꽉 들어찬 사람에게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틈이 없을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실수도 용서할 줄 모를 것 같다. 조금은 비어 있는 듯한 사람에게 더 친근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각 전시장에는 다행히 도우미가 있어서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작가의 숨은 의도를 알려주었지만 현대 미술에 무지한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았다. 그나마 시간이 모자라서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관람을 하였는데 그 중에 아주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아네뜨 메사체’라는 작가가 만든 ‘침투’라는 작품 앞에 섰을 때 언뜻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옛날 정육점에서 고기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천정에 여러 가지를 주렁주렁 달아 놓았는데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다보니 그것은 인간의 몸속에 들어 있는 온갖 내장 구조물이었다. 누더기 같은 폐와 창자, 해부학 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몸속의 장기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뿐더러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도우미의 작품 설명을 듣고 난 후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 공감이 되었다.

 

  작가는 우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명백하게 드러내야 하는 것은 은폐시키는 인간의 모순적인 면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작품을 통하여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어렸을 때는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많은 여백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많은 것을 보았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혼란에 빠진다.”고 어쩌면 작가는 보이지 않는 우리 몸의 내부를 표현 하여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까지도 꺼내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마치 감추고 싶은 나의 속마음까지 들킨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부지런히 관람을 마치고 광주에 계신 두 분의 안내로 망월동 묘역에 들러 참배하고 무등산까지 갔다가 귀가 길에 올랐다. 어둠이 짙어진 고속도로를 달리며 차창에 비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친 중년 여인의 모습이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얼굴 같기도 하고, 전혀 생소한 낯선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다. 나는 눈을 감고 광주에서의 여운을 음미하며 조용히 생각에 빠져 본다.

 

  미술 작품이나 수필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작가가 모든 가식의 옷을 벗고 자기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틀 안에 꽉 채워진 작품보다는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두어 보는 이에게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때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낮에 보았던 작가가 말한 것처럼, 기존의 관념으로 가득 찬 사람보다는 우리가 어린 시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때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이 생기고, 그것이 자연과 인간을 조화시키고 이어주는 고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7, 10

'나의 글모음 > 수필집(불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삭정이의 울음  (0) 2009.08.12
중학동의 추억  (0) 2009.08.08
밥을 함께 먹는일  (0) 2009.08.08
새해를 맞으며  (0) 2009.08.08
바람  (0) 2009.08.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