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설
어느 겨울 남이섬에 촬영을 하러갔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락사락 내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끝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으며 휘몰아치듯 내렸다.
앙상하게 헐벗은 나무에도 벤치에도
눈은 순식간에 쌓여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설경을 찍는다고 좋아하던 동행들도 하나 둘 돌아가고
어느덧 폭설 속에 혼자 남게 되었다.
눈 속에 온 세상이 잠겨 버리듯 정적이 감돌고,
외딴 섬에서 길을 잃고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다.
한 치도 예측할 수 없는 하늘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삶의 여정에도 그날처럼 두렵고 막막할 때가 있을 것이다.
길을 잃은 누구에겐가 작은 팻말이 될 수 있기를
감히 새해 새날에 품어보는 소망이다.
한 향 순( 수필가, 사진작가)
2020년 1월호 < 좋은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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