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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낭만의 모래섬에 가다

by 아네모네(한향순) 2020. 6. 11.

 

 

 

 

 

낭만의 모래섬에 가다.

 

지난 해 겨울, 아들이 살고 있는 호주의 브리즈번에 갔다가 근처에 있는 스트라드브르크라는 섬에 가게 되었다.

이 섬은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모래섬이며 호주의 자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낭만적인 섬이다.

그곳은 4년 전에도 한번 다녀온 적 있는 곳인데, 너무 아름다운 곳을 성급하게 다녀온 아쉬움에

이번에는 좀 더 여유롭게 돌아보고 환상적인 풍경을 즐기기 위해 다시 가게 되었다.

아들네 4식구와 딸, 우리부부까지 대가족이 한차로 출발을 하여 클리브랜드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드디어 스트라드브로크 아일랜드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갈색호수인 브라운 레이크를 가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켰다.

 

 

 

 

 

 

그러나 네비는 자꾸 이상한 길로 안내를 하고, 운전을 하는 아들도 다른 코스가 있는 것

같다고 자꾸 좁은 길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험한 길을 조마조마하며 가다가 차가 모래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스트라드브르크는 원래 모래섬이라 정해진 도로로만 달려야하는데 기계만 믿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날씨는 40도를 웃도는 땡볕에 비지땀을 흘리며 모두 차에서 내려 자동차를 밀면서

모래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차는 점점 더 깊숙이 모래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겁을 먹어 울상이 되었고 우리도 더위에 지쳐서 진땀이 나고 맥이 풀렸다.

그런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어떤 차 한 대가 우리 있는 방향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차에서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들이 여럿이 내리고 우리의 상황을 살펴보더니

서로 대책을 의논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자기들 차에서 무슨 깔판 같은 것을 가져와 차바퀴에 대고

대 여섯 명이 달려들어 차를 밀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참이나 땀을 쏟으며 애를 쓰는데도 차는 모래바람만 일으키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어디서 구해왔는지 굵은 밧줄을 자기 차에 연결하여 끌어내자

차가 모래구덩이에서 간신히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우리는 물론 아이들도 너무 좋아서 박수를 치고 고마운 그들에게 사례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니라고 사양을 하며 가던 길로 떠나버렸다.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건넨 말은 진정으로 고마우면

너희도 다른 사람에게 대신 갚아라.”라는 말이었다.

 

 

 

 

 

 

차 때문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여곡절 끝에 브라운레이크에 도착했다.

브라운 레이크는 모래섬 속에 있는 큰 호수인데 물빛이 처음에는 푸른빛을 띠다가

점점 갈색으로 바뀌는 신기한 담수호이다.

호수를 둘러싼 숲속의 나뭇잎에서 나온 성분이 물을 갈색으로 보이게 한다고 하는데,

수심이 깊지 않고 바닥이 고운 모래로 아이들이 수영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우리가족도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 그동안 맘고생하며 흘린 땀을 식하고 수영을 즐겼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섬 북동쪽에 위치한 마을 포인트 룩아웃이다.

그곳에는 이름처럼 전망대가 있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펼쳐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사파이어 빛 해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조심조심 해변으로 내려가면 수심이 얕아서 오랫동안 청정한 바다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고, 가까이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신나게 구경 할 수도 있다.

해변가 모래위에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양의 해파리가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어 기겁을 하며 놀랐다.

 

 

 

 

 

또한 그 마을에는 기막힌 바다를 보며 해안가를 끼고 30여분 걸을 수 있는 목책으로

만든 길이 있어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기에도 더 할 수 없이 좋았다.

계단을 오를 때 내가 좀 힘들어하니 큰손자가 등을 밀어주며 에스코트를 한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 할머니를 에스코트를 해주나 싶어

눈물이 나도록 흐뭇하고 대견했다.

산책길에서 캥거루와 비슷한 호주의 명물 왈라비도 만났고 물위에 떠있는

커다란 가오리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이곳은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청정지역의 모래섬이었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이 있는데, 땀을 흘리고 난 뒤 아이들과 함께 먹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의 맛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더구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 가족들을 만났고 모두 어렵게 시간을 맞춰서

온 가족이 함께한 여행이었기에 우리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으로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이다.

 

 

 

 

 

 

                                                         2020년 5,6월호 <여행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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