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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모음/수필집 ( 인연의 끈)

밥을 함께 먹는 일

by 아네모네(한향순) 2020. 9. 13.

 

 

 

밥을 함께 먹는 일

 

                                                                                                                  한 향 순

 

얼마 전에 오랜 친구와 밥을 함께 먹었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궁금하던 터라

약속을 잡았는데 식당이 두 사람의 중간지점인 서울시내에 있는 곳이었다.

가족들에게 그 말을 하였더니 모두 난리였다. 코로나로 모두 조심스러운 요즘에 급한 용무도 아니고

복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들끓는 인파속에서 꼭 밥을 먹어야 하느냐고 극심한 반대를 하는 것이었다.

하기는 요즘 조금 수그러들었던 코로나19가 다시 위세를 떨치며 사람들을 위협하곤 한다.

느슨해진 사회분위기 속에 경제활동도 조심스레 재개되었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나라에서 돈도 풀어 경직되었던 사회분위기도

조금씩 풀리다보니 술집이나 노래방등 유흥업소에서 코로나 전파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혼자 살고 있는 친구는 폐쇄된 사회분위기 때문에 외출도 잘 못하고 우울증이 염려 될 만큼 힘들다고 했다.

더구나 오래전부터 생일이 되면 서로 챙겨주던 습관대로 밥이라도 사주려고 했는데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어떻게 할까 며칠 망설이다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냥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지만 모처럼 입에 맞는 음식에다가 반주 한잔을 곁들이니

밀린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와 자연스레 우리의 젊은 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친구와는 오래전부터 취미도 비슷하고 같은 운동을 좋아해서 오랫동안 같이 어울려 다녔다.

더구나 남편끼리도 잘 아는 터이어서 부부여행을 많이 다녔다.

칠년 전, 친구의 남편이 몹쓸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도 모두 출가하고 나니

친구는 혼자 외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혼자 사는 친구가 걱정되다가도 멀리 살다보니 그저 가끔 만나 밥이나 먹곤 하였다.

밥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친구 도리를 한다고 위안을 삼았던 모양이다.

밥을 함께 먹는 일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일이지만, 가장 거룩한 일일지도 모른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는 사람들이 결국은 동지인 셈이다.

요즘같이 가족 외에는 서로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똑같은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십여 년도 넘은 세월이니

그때와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K선생은 사람이 서로 친숙해 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식구라는 말의 사전적 풀이는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대체로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옛날의 대가족에 세대에 비해 요즘은 단출한 핵가족이나 혼자 사는 사람도 많아졌다.

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이 쑥스러웠다면 요즘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있다.

하물며 한집에 사는 가족끼리도 서로 바쁘고 시간이 맞지 않아 제각기 밥을 먹곤 했다.

올해 초, 보지도 듣지도 못한 코로나 사태로 모든 사람이 괴로움을 겪으며

집안에 갇혀 있다 보니 외식도 줄어들고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보니 주부들의 고충이 많아졌지만 식구들끼리 모여 밥을 먹을 기회가 많아졌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나가지 못하고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도 재택근무를 하며

남들과의 접촉을 꺼리며 생활하다보니 웬만한 경조사나 모임도 취소되고

가족 외에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

몇 년 전에 심야식당이란 일본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다. 밤에만 영업을 하는 조그만 식당인데

주인이 직접 음식을 하고 그것을 부담 없이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영화였다.

주인은 그저 손님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들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 뿐 이었는데

그곳은 사람들의 온기를 이어주는 공간이 된 것이다.

자신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심야식당 같은 공간이 있다면

누구나 살아가는데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러 가지 역할에 힘들어한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역할, 부모나 자식으로서의 역할은 늘 책임을 요구하고 자신을 가면 속에 가두게 한다.

그런 일상 속에서 오로지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심야식당 같은 공간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친구와 밥을 함께 먹는 일은 배고픔보다는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나도 친구에게 심야식당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2020년 가을호 <계간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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