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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폐선

by 아네모네(한향순) 2023. 3. 22.

 

 

폐선

 

                                                               한 향 순

 

작은 포구에는 밀물이 시작되는지 갯벌은 점점 잠겨들고

수평선과 작은 섬 뒤로 불그레한 노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물이 들어오는 갯고랑에는 작은 물고기가 있는지

갈매기들이 가끔 그 위를 선회하고 있다.

 

갈매기가 앉은 곳에 얼른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는

작은 폐선이 시커먼 갯벌 속으로 잠겨 들어가고 있었다.

한때는 주인이 애지중지하며 배를 길들였을 것이고,

파도와 싸우며 그들의 밥벌이를 책임졌을 작은 목선이다.

이제는 늙고 쇠락하여 주인에게 버려지고

아무런 항거도 못하고 갯벌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목선은 한창 왕성하게 일을 하던 시절의 자랑스러운 패기와

수많은 기억들을 함구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사람도 저 폐선처럼 늙고 병이 들면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결국 자연의 일부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삶도 결국은 소멸로 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일몰 무렵이다.

 

 

 

                                                                             2023년 3월호 <좋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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