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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139

꽃무릇 한껏 가을 볕 받아 붉은 빛으로 토해내는 꽃.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그리다가 제 몸 활활 태워 선홍빛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절집 근처에 여인의 속눈썹 같은 붉은 꽃잎을 지닌 꽃무릇이 피었다. 한 향 순 ( 수필가, 사진작가) 2016-10 <좋은수필 > 포토에세이 2016. 10. 16.
구절초 하얀 소복을 입은 듯 청초한 가을의 꽃 구절초 누구를 기다리다 물가에 꽃잎을 떨어뜨렸을까. 가는 목 길게 빼고 그리운 님 기다리다 심술궂은 바람이 기어이 흔들어 놓고 간 꽃이 진 자리, 그렇게 또 가을은 간다. 한 향 순 < 수필가, 사진작가> 2016-09 <좋은수필> 포토에세이 2016. 10. 16.
길에서 길을 생각한다. 길에서 길을 생각한다. 한 향 순 길은 끝날 것 같지 않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하얀 설산이 웅장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고원의 길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웠다. 협곡을 건너 산을 넘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풍광에 압도되어 말을 잃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나무 한그루 없는 고원에는 .. 2015. 11. 12.
염전의 하루 염전의 하루 한 향 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7월은 몸도 마음도 더위에 지치기 쉬운 계절이다. 행여 시원한 빗줄기라도 쏟아져주기를 기대하지만, 비 소식은 감감하고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뙤약볕이 내리쬐어야 반가워하는 동주염전을 찾았다. 몇 년 전 부터 사진촬영을 다니.. 2015. 7. 1.
찔레꽃 향기 찔레꽃 향기 한 향 순 어느 날 오후,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데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배어 나왔다. 숲속에 숨어 있어 눈에 얼른 뜨이지는 않았지만, 초록으로 엉켜있는 풀숲에 하얀 찔레꽃이 수줍은 듯 피어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찔레꽃은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소박한 꽃이지만.. 2015. 6. 15.
꽃대궐이 된 복사골 꽃 대궐이 된 복사 골 한 향 순 밤새 비가 내렸다. 봄비는 마른하늘을 적시더니 앞 다투어 피던 개나리 진달래 벚꽃까지 모두 떨어지게 했다. 그러고 나면 느지막이 분홍색 꽃망울을 터트리는 동네가 있다. 아늑하고 부드러운 골짜기를 따라 옷고름 같이 좁은 길로 들어서면 꿈에서나 본 .. 2015. 5. 6.
우산 이야기 우산 이야기 한 향 순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오늘은 어떤 우산을 들고 나갈까 망설이다가 노란 해바라기 우산을 들고 나온다. 우중충한 날씨에 마음만이라도 해바라기를 닮고 싶어서다. 아파트를 나서며 호기롭게 우산을 쫙 펼치니 언제 부러졌는지 우산살 하나가 무릎을 꺾고 축 늘어.. 2015. 5. 2.
언 땅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언 땅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한 향 순 올 겨울은 큰 추위 없이 수월하게 넘어 가려나 싶더니 늦추위가 남아 다가오는 봄을 시샘한다. 그래도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가까이 오면 언 땅속에도 생명이 움트는 봄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마른가지에는 수액이 조금씩 흐르고 겨우.. 2015. 2. 28.
추억의 뻥튀기 추억의 뻥튀기 한 향 순 겨울이 끝나가는 2월은 혹한은 없지만 가끔 눈 폭탄을 맞기도 하며, 민속명절인 설날이 끼어있어 주부들의 마음과 손길이 바빠지는 시기이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호주에서 방학을 이용하여 손자들이 왔다. 저희 부모는 바빠서 같이 오지 못하고 초등학생인 아.. 2015. 2. 2.
서리꽃의 향연 서리꽃의 향연 한 향 순 오래 전 어느 해 겨울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별다른 준비도 없이 동네에 있는 광교산을 올랐다가 무척 놀란 적이 있었다. 그해따라 눈이 귀해서 1월이 지나도록 변변한 눈 구경도 하지 못하고 겨울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산을 거의 올랐을 즈음부터 산에 눈이 온.. 2015. 1. 10.
새해 아침에 새해 아침에 한 향 순 새해 새날 아침이다. 어제가 오늘 같은 유장한 세월 속에서 해가 바뀌었다고 새로울 일도, 별다를 일도 없는 나날이지만 그래도 새해에 대한 느낌은 조금 다르다. 후회되는 지난 시간들은 모두 리셋이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핑계와 희망이 생겨서일까. 며칠 동.. 2015. 1. 2.
눈이 온 날 아침에 눈이 온 날 아침에 한 향 순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눈이 내려서 하얀 세상이 되어있었다. 뉴스에서는 밤사이 조용히 내린 눈 때문에 출근길 교통대란이 우려된다고 하지만 하얀 설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카메라 가방부터 챙긴다. 어디로 가야 멋진 설경을 볼 수 있을까 생.. 2014.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