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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박물관66

더 숲 초소 책방 인왕산 중턱에 있는 더숲 초소책방은 원래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건축되어 50년 넘게 경찰초소로 사용됐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해당 초소는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분단과 대립의 아픔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리모델링 과정에서 벽돌로 된 초소 외벽 일부와 철제 출입문을 그대로 남겨뒀다. 초소책방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밖에서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덕분에 인공적인 건축물이라기보다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책방 내부에선 통유리 너머 남산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월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책방 한편에는 환경문제를 다룬 책들을 따로 비치했는데, 카페에서도 사탕수수로 만든 자연분해 친환경 스트로우를 사용해 눈길을 끈다. 북카페에서는 각종 음료는 물론 맛있는 빵도 팔고.. 2023. 2. 25.
윤동주 문학관 인왕산 성곽길을 걸어서 언덕 위에 자리한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윤동주 문학관은 , ,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민족 저항 시인 윤동주의 발자취와 세상을 향한 그의 시선을 기억하고자 2012년 세워졌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의미 있게 리모델링 한 곳으로, 2012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2014년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하고, 2015년에는 현충시설로 지정되면서 공간의 가치와 더불어 그 의미도 주목받고 있다. ‘시인채'로 이름 붙여진 1전시실의 두꺼운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2전시실'열린 우물'. 어찌 보면 작은 뜨락에 불과한 그곳의 전시품은 단 하나. 직사각형으로 뻥 뚫린 천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하늘이다. 거기서 파아란 바람이 불고,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있고.. 2023. 2. 22.
명품의 올드카 이층에 올라갔더니 더 오래된 명품차들이 수없이 많았다. 이 시발차는 1955년 국제 시발 자동차인데 미군지프차를 기초로 만든 한국 최초의 양산차이기도 하다. 더구나 고급 경주용 자동차들도 많았는데 영화속에서나 나올법한 명품 차들도 무척 많았다. 몇 몇 차들은 직접 시승도 해보고 사진도 찍을수 있다. 2023. 2. 19.
삼성화재 교통박물관 따뜻한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봄 날, 에버랜드 옆에 있다는 교통박물관을 찾았다. 국내 유일의 교통 전문박물관인 삼성화재교통박물관에는 세계적인 명차가 가득 전시되어 있다. 400여 대의 희귀 자동차들이 미인 대회에 출전하기라도 한 듯 저마다의 자태를 뽐낸다.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이보다 박물관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삼성화재교통박물관은 자동차의 역사와 기능에 대해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소개하고 있다. 박물관 옆으로 드넓은 잔디 공원이 있어, 에버랜드를 대신할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이다. 우선 야외 전시장을 둘러보았는데 눈에 익은 오래 된 차들이 잘 정비되어 옛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옛날 영화에서나 보았던 예쁜 올드카들이 옛모습을 간직한채 전시되어 있.. 2023. 2. 15.
한영수 사진전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인 한영수(1933-1999)는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고 제대 후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급격히 변하는 사회상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미군 PX에서 카메라를 구입한 뒤 사진 잡지를 보며 사진 기술을 독학했다. 그리고 여유롭고 따스한 시선으로 을 담아냈다. ​ 작가는 1956년부터 1963년까지 길에서 만난 여성들을 작가만의 독보적인 시각으로 기록했다. 이번 전시는 특히, 그 여성들의 ‘당당함’에 주목하였다. 사진 속 여성들은 남자들 앞에서도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어 있지도 않으며, 남자를 유혹하는 웃음도 슬픈 울음도 없다. 양장을 빼입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다방에 앉아 독서하고, 공원 벤치에서 신문을 읽는다. 광주리를 머리에 인 채 아이를 업고 있다. 다양한 직업에 .. 2023. 2. 12.
폰타나 전 <2,3,4 섹션> 폰타나전 두번째 섹션은 로 우리 주변의 도시 풍경과 사물을 특별한 해석으로 담았다. 풍경전체를 담지않고 현실에서 한부분만을 선택하여 담았는데, 폰타나는 사진은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세번째 섹션은 그중에서도 사람이 들어간 풍경을 취했으며 그림자 또는 다른 방법으로 사람이 들어 간 작품들이었다. 네번째는 아스팔티라는 부분으로 아스팔트 위의 신선한 화각을 주시했다. 2023. 1. 13.
컬러 인 라이프(프랑코 폰타나) 삼성동에 있는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컬러사진의 선구자인 프랑코 폰타나 전을 관람했다. [컬러 인 라이프]는 우리 나라 최초의 프랑코 폰타나 회고전으로, 그가 50년 넘게 렌즈라는 매개로 담아온 놀라운 삶의 형태와 색채들, 그리고 어떻게 그가 인생이라는 풍경을 포착하고 소유하였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 1933년 이탈리아 북부에서 태어 난 프랑코 폰타나는 경이로운 색채 풍경으로 세계적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흑백 사진이 주류였던 1960년대부터 컬러 필름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컬러 사진의 선구자다. '현대 컬러 풍경 사진의 마술사’ 등 다양한 수식어를 보유한 폰타나는 섬세하면서도 과감한 대비를 보여주는 색감의 회화 같은 사진을 통해 강렬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 2023. 1. 1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아침나절 약간의 눈이 온데다가 날씨가 좀 풀린것 같아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그러나 쌓인 눈은 별로 없고 양지쪽은 모두 녹아있었다. 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조각품과 청계산이 손에 잡힐듯이 보이고 아래는 "삶의 이야기"란 제목으로 여러사람이 앉아있는 조각품을 배경으로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위 작품은 "각축의 인생"이라는 작품인데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공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의 동작이 힘겹게 보인다. 2022. 12. 28.
장욱진 전 용인에 있는 포은 아트홀에서 내가 좋아하는 화가 장욱진 전을 한다기에 벼르기만 하다가 며칠 전, 틈은 내어 관람을 하였다. 우선 로비에 들어서니 크게 페인팅을 한 벽화가 보인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소박했던 장욱진은 이중섭 김환기와 함께 근현대회화의 대가로 꼽힌다. 2022. 8. 13.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한 장르를 개척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엇이든 처음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다. 이제는 비디오 아트가 활발하지만 그가 첫 개인전을 선보였을 때만 해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전까지 예술계는 회화나 조각 등이 중심이었다. 또한 뒤샹이 기성품 소변기를 소재로 〈샘〉을 선보인 이후 작품을 '만든다'는 개념마저 흔들렸다. 백남준은 그 대안으로 비디오아트를 주장해서 많은 예술가들의 공감을 얻었다. 아방가르드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 예술에 대한 의식,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추구하는 예술운동'이라고 한다. 새로운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수단은 바로 TV였는데, 컬러 프로젝터부터 여러 개의 스크린까지 다양한 양식을 뒤섞어 만들어 새로운 예술을 선보였다. 백남준은 아.. 2022. 8. 7.
백남준 아트쎈터 무더운 여름에 좋은 피서법 중 하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 것일게다. 푹푹 찌는 여름 날 가까운 곳에 있지만 오래전에 가보았던 백남준 아트쎈터를 찾았다. 이 건물은 2003년에 국제현상설계공모에서 독일 건축가의 설계안이 채택되었고, 공사는 2006년 5월에 시작됐다. 아쉽게도 백남준은 그보다 5개월 앞선 2006년 1월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트센터가 완성되는 걸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을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불렀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외관부터 눈길을 끈다. 지하 2층과 지상 3층의 건물로 겹겹이 유리로 둘러쌓여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알파벳 'P' 모양이다. 백남준의 영문 성 'Paik'의 첫 자를 딴것이다. 초창기 백남준은 전위 음악가였는데, 음악 퍼포먼스가 해를 거듭하며 비디오아트로.. 2022. 8. 5.
만해기념관 지인들과 남한산성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산책겸 만해기념관을 찾았다. 우리민족의 자랑이자 겨레의 큰 스승인 만해 한용운의 업적을 기리고자 만든 기념관이었다. 조금씩 봄기운이 감도는 남한산성 한자락에 호국정신이 깃든 그의 기념관이 세워지게 된 것은 그가 말년에 거처하던 성북동 심우장에 있던 유품들을 1990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성씨뿐 아니라 평소에도 존경하던 만해선생은 1931년에 불교잡지인 지를 인수하여 만드셨는데 그 잡지가 아직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8년전 무슨 인연인지 가톨릭신자인 나에게 그잡지사에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 왔다. 나는 불교에 관해서 아는것도 별로 없고 불심도 없어 극구 사양하였지만 무슨 연유인지 2014년~2015년 이년동안 그 잡지에 포토에세이를 연재를 했.. 2022.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