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모음195 익숙한 몸짓들과 이별을 고하며 익숙한 몸짓들과 이별을 고하며 아침에 눈을 뜨면 혹시나 하며 이불을 젖히고 다리부터 살핀다. 예전처럼 벌떡 일어나던 건강한 다리이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그러나 여전히 오른쪽 무릎은 산모의 얼굴처럼 퉁퉁 부어 있고, 침과 부항을 뜬 자리가 푸르죽죽하게 멍으로 남아 마치 무언의 데모를 .. 2009. 7. 15. 호숫가의 아침 호숫가의 아침 한 향 순 꿈결인 듯 낯선 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느새 동이 텄는지 집안은 훤하게 밝았다. 화들짝 놀라 옆자리를 보니, 새벽잠이 없는 남편은 벌써 산책이라도 나간 모양이다. 눈을 비비며 커튼을 젖히고 나니 건너편의 숲과 호수가 기지개를 켜며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서야 비.. 2009. 7. 14. 호칭에 대하여 호칭에 대하여 한 향 순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초조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예상했던 것처럼 좌석버스 안은 만원이라 빈자리가 없었다. 비가 와서 우산과 핸드백에 오늘 전해줄 물건까지 들고 서있으려니 이리저리 중심을 못 잡고 차가 쏠리는 대로 몸이 기우뚱거린다. 이런 상태로 한 시간 이상을.. 2009. 7. 14. 자동응답 전화기 자동 응답 전화기 한 향순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 때문에 외출할 일을 뒤로 미루고 집에서 보내던 하루였다. 밀렸던 일을 대충 끝내고 나서 모처럼 한가해진 시간에 친구들과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어 여기저기 다이얼을 돌려본다. 몇 군데나 부재중의 신호음만 울리더니 드디어 한 곳에서 전화를 받는.. 2009. 7. 14. 상식이 있는 사람 상식(常識)이 있는 사람 한 향 순 12월도 얼마 남지 않은, 세모(歲暮)를 눈앞에 둔 즈음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늘 가슴이 허전하고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허둥대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속절없이 또 한해가 가고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의 휘둘림에 멍.. 2009. 7. 14. 내 몸을 들여다보며 내 몸을 들여다보며 모니터에 보이는 장면은 마치 커다란 동굴에 무언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꾸불꾸불한 동굴 안에는 물과 거품이 보이기도 하고 조그만 돌들도 보이는 것 같았다. 검사를 하느라 복부의 팽만감과 통증 때문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나에게, 검사 요원은 모니터를 쳐다보라고 했.. 2009. 7. 13. 무를 뽑으며 무우를 뽑으며.... 한 향순 짧아진 가을볕이 아쉬워 해가 기울기전에 부지런히 무를 뽑는다. 그리고 어머니와 밭고랑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총각무와 순무를 다듬는다. 밭에서 갓 뽑아낸 무를 다듬다가 맛있어 보이는 것은 껍질을 벗겨 어머니께 잘라 드리기도 하고, 한입 베어 물면 달.. 2009. 7. 13. 강이 있는 그림 강이 있는 그림 한 향 순 우리 집 식탁에 앉으면 마주 보이는 곳에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집안일을 끝내고 커피라도 마시면서 습관처럼 바라보는 그림은 언제나 친근한 고향을 대할 때처럼 잔잔한 기쁨을 안겨 준다. 지금은 한강대교로 불리고 있지만, 전에는 제일 한강교로 불리던 철재(鐵材)다리.. 2009. 7. 13. 불씨 불 씨 오늘 아침이었다. 요즘 들어 자주 겪는 건망증 때문에 무엇을 찾느라고 집안을 뒤지다가 엉뚱한 장소에서 생소한 꾸러미를 찾게 되었다. 비닐봉지로 묶은 다음 여러 겹의 봉지로 포장을 했는데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문갑 깊숙이 보관한 것을 보니 중요한 물건 인 것 같아 가슴을 설레며 .. 2009. 7. 13. 마음으로 하는말 마음으로 하는 말 한 향순 그날은 집에 손님들을 초대한 날이었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메모까지 해가며 찬거리를 사왔는데도 일을 하다 보니 몇 가지 빠뜨린 것이 있었다. 약속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혼자서 식사준비를 하다 말고 다시 시장에 가야 한다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 2009. 7. 13. 달맞이꽃을 보며 달맞이꽃을 보며 아침부터 바람 한 점 없는 찌는 듯한 날씨였다. 친구에게서 달맞이꽃을 보러 오지 않겠느냐고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야생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예전에 어떤 문우의 글에서 달빛을 받아 달맞이꽃 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마치 음악 소리 같았다는 수필을 읽은 적이 있어서 그 꽃.. 2009. 5. 3. 순애 이야기 순애이야기 버스터미널까지 순애를 배웅하고 집에 들어오니, 순애가 가져온 짐 보따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아까 그 애가 일일이 가르쳐주며 봉지를 열어 보였는데도 그때는 건성으로 들었는지 꾸러미들은 생소해 보였다. 새삼스레 그것들을 하나씩 풀어보니 고춧가루가 한 되쯤 들어있고 깨와 .. 2009. 5. 3. 이전 1 ··· 13 14 15 16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