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모음195 정녕 봄은 오는가 정녕 봄은 오는가. 한 향 순 한 달 넘게 병원에 있다가 집에 오니 집이 오히려 서먹하게 여겨졌다. 하얀 눈이 왔을 때, 짐을 싸가지고 병원에 들어갔는데 어느새 계절은 봄이 되어 남녘에는 꽃소식이 들린다. 칠십 여년을 무리하게 써먹은 무릎이 말썽을 부려 애를 먹다가 몇 해 동안이나 벼르던 무릎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수술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고 수술 후, 재활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요즘 기승을 부리는 오미크론 때문에 수술과정을 더 힘들게 하였다. 수술날짜를 기다렸다가 pcr검사까지 하고 병원에 갔는데 다시 신속항원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운이 나빴는지 두 번이나 한 검사에서 결과가 애매하게 나와 입원을 거절당하고 짐을 싸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닷새 후에야 재입.. 2022. 4. 1. 삶은 새로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삶은 새로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한 향 순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이 이년 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모두 지친 가운데 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고, 새해에는 부디 병균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예전처럼 좁혀질 수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살아오면서 이런 공포감 속에서 불안을 느꼈을 때가 언제였을까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니 극심한 공포감은 느껴보지 못했는데 여덟 살 쯤 이었어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가다가 그만 손을 놓쳐서 길을 잃었지요. 반나절 후에야 다른 동네에서 꾀죄죄한 나를 찾았다는데 그때의 공포와 두려움은 지금까지도 강하게 기억 속에 박혀있습니다. 그 후로는 부모님 밑에서 무탈하게 성장하여 이 나이까지 평범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을 하고 아.. 2022. 3. 26. 안개에 갇히던 날 안개에 갇히던 날 한 향 순 지난 해, 지척을 분간 할 수 없는 해무 속에 하루 종일 갇힌 적이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릴 만큼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굴업도에 며칠 머물렀다.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날, 아침부터 바다에서 희뿌연 안개가 밀려오더니 점점 섬을 삼켜버리고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해무의 기세가 얼마나 무섭고 빠른지 종종 화재현장에서 보았던 뿌연 연기 같았다. 해가 올라오면 안개가 좀 걷힐 것이라는 바람 속에 종일 기다렸으나 해무는 거센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날은 배가 뜨지 못할 거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도 행여 늦게라도 오지 않을까 싶어 눈이 빠지게 망망대해를 바라보았으나 끝내 배는 오지 않았다. 섬 여행을 할 .. 2022. 3. 26. 마음 관리 마음 관리 한 향 순 어느새 두 번째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지 이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확진자의 숫자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동안 외출도 자제하고 사람을 경계하며 예민해지다보니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부쩍 늘고 극도의 피로감과 번아웃 증상을 경험했다는 이들도 더러 생겨났다. 그동안 코로나로 경제적인 압박뿐 아니라, 정신적인 압박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부쩍 많아진 것이다. 하나뿐인 남동생도 그중 한사람이다. 오랫동안 식욕부진과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발견한 병명이 림프암이었다. 다행이 발견시기가 그리 늦지 않아 항암치료를 잘 받으면 생명에는 그리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 동생은 체력이 고갈되어 병원에 입, 퇴.. 2021. 12. 9. 다시 찾은 월정사 다시 찾은 월정사 한 향 순 올해 겨울은 유난히 몸도 마음도 추운 것 같다. 겨울이 오면서부터 기승을 부리던 전염병은 가족과 친지들의 안부를 챙겨주던 연말연시도 없애버리더니 이젠 명절까지도 사람을 절해고도처럼 고립시키려나보다. 게다가 몇 년 만의 한파까지 겹쳐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마음이 추우니 올 겨울이 더 춥게 느껴져, 모든 의욕도 줄어들고 하루하루가 답답했다. 오히려 많아진 시간을 고마워하기는커녕 나무늘보처럼 게을러지기 일쑤였다. 그런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떨어버리려고 선택한 방법이 겨울바다를 보러 가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답답하고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때는 바다를 찾아 격렬하게 부딪히는 파도를 보며 응어리진 마음을 쏟아내곤 한다. 그런데 신년 초에는 코로나로 이런 바닷가마저 통제를 했다. 그.. 2021. 4. 2. 팽나무에 부는 바람 팽나무에 부는 바람 한 향 순 나무는 비스듬히 누워서 모자를 쓴 것처럼 보였다. 뺨에 와 닿는 바람이 여인의 손길처럼 한결 부드러워진걸 보니 바람은 벌써 봄을 품고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제주를 오가며 사진촬영을 하는데, 제주 특유의 돌과 바다도 좋아하지만 요즘은 유독 제주의 팽나무에 마음이 끌린다. 바람이 강한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뿌리를 단단히 박고 중심을 잡아야 했으니 나무는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까. 그래서인지 이곳의 팽나무는 유독 가지가 바람 부는 방향으로 뻗어있으며, 나뭇가지는 마치 매듭을 묶어놓은 것처럼 울퉁불퉁 굵은 마디가 생겼다. 제주의 팽나무는 방언으로 폭낭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곳을 가도 마을 어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짠물과 갯바람을 버틸 수 있는 만큼 강한 나무이기도 하.. 2021. 3. 15. 연암의 발자취를 따라서 연암의 발자취를 따라서 한 향 순 사진 속의 사람들은 한껏 웃고 있었다. 낯선 여행길에서 들뜬 감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서였을까. 2007년 오월, 오랫동안 함께 수필을 쓰고 공부하던 산영수필문학회 회원들이 이정림 선생님을 모시고 중국으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따라서 문학기행을 떠났다. 강의실이나 딱딱한 공간에서 만나던 문우들과 며칠간의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만남의 기회이기도 했다. 즐거움에 들뜬 문우들은 조그만 일에도 어린아이들처럼 까르르 웃고 떠들며 모두 나이를 잊은 모습들이었다. 더구나 열하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분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으로 재편집 하신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이었다. 우리는 베이징에서 출발해 고북구(古北口) 장성을 통과해 금.. 2021. 3. 9. 인연의 끈 작가의 말 한 향 순 온 세상이 몹쓸 병균 때문에 힘들고 답답하던 날들이 쌓여 시간을 도둑맞은 것처럼 열 달이나 흘렀다. 그동안 손발이 묶인 것처럼 무력하게 지내다가 세 번째 수필집을 묶어볼 용기를 내게 되었다. 2007년에 첫 번째 수필집를 내고, 2013년에 두 번째 수필집를 묶었으니 2019년에 출판한 ‘한향순의 포토기행’를 제외하면 수필집으로는 7년 만에 엮는 세 번째 수필집이다. 은 내 인생 후반기에 찾아 온 여러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곱게 갈무리하고 싶은 열망을 담았다. 불가에서는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으로 일체만물은 모두 상대적 의존관계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인연은 하늘이 만들어주지만 그것을 이어가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사이에 인연.. 2020. 10. 23. 새들의 천국 새들의 천국 한 향 순 뉴질랜드 서쪽해안이자 오클랜드 북쪽에 있는 무리와이 비치는 거친 파도와 검은 모래해변으로 유명하다. 또한 영화 ‘피아노의’ 촬영지이기도 하며 ‘가넷’이라는 새들의 서식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 가족이 해변에 다다르니 듣던 대로 모래가 검은색인 검은 해변이 나왔다. 오래전 인상 깊게 보았던 ‘피아노’의 촬영장소라고 하여 유심히 둘러보니 넓은 해변에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있던 인상 깊은 장면이 떠올랐다.. 차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선인장 종류인 용설란이 꽃을 피워 가로수처럼 늘어져있고 왜가리 비슷한 큰 새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이 눈에 띠었다. 언덕 위에는 군데군데 전망대 같은 데크를 만들어 놓았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평평한 언덕과 바위 위에 수많은 하얀 점들이 보였다.. 2020. 9. 13. 밥을 함께 먹는 일 밥을 함께 먹는 일 한 향 순 얼마 전에 오랜 친구와 밥을 함께 먹었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궁금하던 터라 약속을 잡았는데 식당이 두 사람의 중간지점인 서울시내에 있는 곳이었다. 가족들에게 그 말을 하였더니 모두 난리였다. 코로나로 모두 조심스러운 요즘에 급한 용무도 아니고 복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들끓는 인파속에서 꼭 밥을 먹어야 하느냐고 극심한 반대를 하는 것이었다. 하기는 요즘 조금 수그러들었던 코로나19가 다시 위세를 떨치며 사람들을 위협하곤 한다. 느슨해진 사회분위기 속에 경제활동도 조심스레 재개되었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나라에서 돈도 풀어 경직되었던 사회분위기도 조금씩 풀리다보니 술집이나 노래방등 유흥업소에서 코로나 전파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혼자 살고 있는 친구는 폐쇄된.. 2020. 9. 13. 마그마가 꿈틀거리는 불의 땅 마그마가 꿈틀거리는 불의 땅 한 향 순 뉴질랜드 북섬은 아직도 땅 밑에 마그마가 꿈틀거리는 불의 땅이다. 작년에 뉴질랜드 여행을 마치고 호주로 오자마자 화이트섬의 화산폭발로 많은 관광객과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북섬 어딜 가나 뜨거운 분화구나 간헐천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뉴질랜드 북섬 로토루아 남쪽 온천 지역에 있는 와카레와레와는 원주민 마오리족이 살고 있는 민속마을이다. 마오리족들은 옛날부터 이곳에서 계속 살아왔고, 생존과 요리를 위해 지열 활동을 이용해 왔다. 마을입구를 지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마을로 들어서자 역한 유황냄새가 났다. 마을 전체가 알카리성 염화온천지대로 아직도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 500개의 풀과 65개의 분출구멍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지열을 이용하여 땅속에서 항이라는.. 2020. 7. 8. 낭만의 모래섬에 가다 낭만의 모래섬에 가다. 지난 해 겨울, 아들이 살고 있는 호주의 브리즈번에 갔다가 근처에 있는 “스트라드브르크”라는 섬에 가게 되었다. 이 섬은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모래섬이며 호주의 자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낭만적인 섬이다. 그곳은 4년 전에도 한번 다녀온 적 있는 곳인데, 너무 아름다운 곳을 성급하게 다녀온 아쉬움에 이번에는 좀 더 여유롭게 돌아보고 환상적인 풍경을 즐기기 위해 다시 가게 되었다. 아들네 4식구와 딸, 우리부부까지 대가족이 한차로 출발을 하여 클리브랜드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드디어 “스트라드브로크 아일랜드”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갈색호수인 “브라운 레이크”를 가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켰다. 그러나 네비는 자꾸 이상한 길로.. 2020. 6. 11. 이전 1 2 3 4 5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