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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139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한 향 순 멀리서나마 안나푸르나를 꼭 보고 싶었다. 안나푸르나는 네팔의 히말라야의 여러 산중의 하나이며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수없이 도전해온 곳의 지명뿐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단어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느 산악용품 브랜드에서는 ‘당신 마음속의 안나푸르나는 무엇입니까’라는 카피를 내놓기도 하여 더욱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안나푸르나는 함부로 오르지 못할 산이기에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와 꿈을 의미하기에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 동경의 대상이었던 안나푸르나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네팔 여행을 결심했다.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를 따라 호텔에 짐을 풀고 관광을 위해 카트만두 시내로 나왔다. .. 2021. 5. 4.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처럼 꽃잎이 지는 모습에 속절없이 가슴이 내려앉는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날은 너무 대책 없이 지나간다. 그러니 꽃이 예쁘고 화사할수록 마음은 심란하다. 나이 먹은 이들에게 다시 오는 봄은 이미 봄이 아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자던 맹세도 세월 앞에는 속절없이 사라진다. 봄날은 그렇게 간다. 세월도 그렇게 간다. 이제 우리에게 얼마큼의 봄이 얼마나 남았을까. 계절은 봄이지만 나의 봄은 아련한 기억이다 2021. 5. 2.
봄은 정녕 오고 있는가 봄은 정녕 오고 있는가. 한 향 순 올 겨울은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다. 겨우내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사람을 움츠리게 하더니 결국은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확인하는 명절도 실종되고 말았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기피하는 동안 외로움은 몸집을 부풀리고 사람들은 섬처럼 고립되어갔다. 날씨가 조금 풀렸다는 소식에 가볍게 입고 거리에 나갔다가 떠나지 못한 겨울에게 반격을 당하고 따뜻한 봄을 애타게 기다려본다. 산자락의 잔설도 녹이는 촉촉한 봄비가 내리면 삭막하던 나무에도 물기가 오르고 세상만물은 기지개를 켜리라. 나는 가만히 앉아서 봄을 기다리지 않고 봄을 찾아 길을 나설 것이다. 언 땅을 비집고 얼굴을 내미는 노란 복수초도 만나러 가고, 겨우내 쌓여있던 낙엽더미 속에서 뽀얀 솜털을 뒤집어쓰고 올라오는 .. 2021. 3. 29.
해빙기(解氷期) 해빙기(解氷期) 한 향 순 며칠 동안 강추위가 계속되더니 강이 꽁꽁 얼었다. 사람사이에 온기마저도 단절시키고 몸을 사리던 시간들도 꽁꽁 얼어 행여 녹지 않는 장벽이 될 것 같았다. 괴로움에 터져 나온 말들은 조용히 얼음 속으로 가라앉고, 겨울바람이 기승을 부리는 동안에도 강물은 얼음 밑에서 소리죽여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 조금씩 훈풍이 불기 시작하고 강이 쩡쩡 울기 시작하면 얼었던 강물도 조금씩 풀리겠지. 꽁꽁 얼었던 강이 풀리면 우리를 조이던 속박의 매듭도 조금씩 느슨해 질 것이다. 얼음이 녹는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인 것을 본능으로 알아챈 동물들도 조심하는 시기 그때가 언제 오려는지 애타게 기다려본다. 2021. 2. 6.
떠다니는 갈대섬 떠다니는 갈대 섬 한 향 순 파란 물빛과 하늘빛이 너무 닮아 티티카카호수는 마치 하늘을 품고 있는 호수 같았다. 수평선 멀리 보이는 안데스산맥의 연봉들이 없었다면 어디까지가 호수이고 어디부터 하늘인지 얼른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남미 페루에 있는 티티카카호수는 해발 3800m상에 있는데, 지구상에서 하늘과 제일 가깝고 또한 바다같이 넓은 호수이다. 잉카제국의 건국신화에 의하면 세상의 첫 번째 태양빛이 티티카카에서 내려와 창시자인 ‘ 망코 카파크’가 강림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이곳을 보기 위해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던가. 비행기를 수없이 갈아타고 도착한 페루의 쿠스코에서 버스로 해발 4300m가 넘는 고지를 달려서 푸노로 왔다. 티티카카호수 푸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사십분쯤 달리니 크고 작은 갈대 섬들이.. 2021. 1. 24.
기억속의 시간여행 기억 속의 시간여행 한 향 순 해가 바뀐다고 유장한 세월 속에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 새해이다. 그래도 한 해 동안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간들은 지난 세월 속에 묻어버리고 기쁜 소식을 전해줄 하얀 눈을 기다려본다. 행여 눈이 오면 더욱 좋고 눈이 없어도 이맘때쯤 찾게 되는 곳은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이다. 한국민속촌은 30만평이 넘는 부지에 조선시대의 가옥을 옮겨와서 만든 민족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우리의 생활풍속을 한데 모아 1974년 창립되어 지금까지 생생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속의 전통문화 관광지로서 알려져 있다. 사십 여 년 전, 우리 부부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어린 아이들 손을 잡고 처음 찾았던 민속촌은 그저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영화나 .. 2021. 1. 20.
외로운 가을 외로운 가을 늦가을 작은 포구에 해가 기울고 있었다. 야생의 땅에 비껴든 햇살이 붉은색으로 변하자 머리를 풀어헤친 갈대도 덩달아 붉게 물들었다. 잡초가 우거진 벌판에는 낡은 폐선이 버려져있고 그 끝에 오래 웅크리고 앉아있는 남자를 보았다. 무슨 연유로 그 사람이 거기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 장면은 가슴이 뭉클하도록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남자의 뒷모습은 설명이 없어도 짙은 외로움이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힘든 가장인지, 아니면 먼 이국땅에 일하러 온 노동자의 고뇌인지, 그 모습은 오랫동안 깊은 연민으로 다가왔다. 코로나의 광풍이 몰아치는 올해 가을 주위에는 이런 모습의 사람들이 많아졌다.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고 덜 아픈 것은 아니지 않은가. 혼자만의 외로움이 아니라고 참으라고만 할 것인가. 누.. 2020. 12. 2.
슬픈 역사를 간직한 다리 슬픈 역사를 간직한 다리 인도양의 진주로 불리는 스리랑카의 엘라 지역을 여행하면서 궁금했던 라는 다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은 ‘엘라’에서 40분정도 걸어가야 볼 수 있는데, 다리는 평범한 관광지로만 기억하기에는 아쉬운 스리랑카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가 숨어있었다. 다리의 역사를 듣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게 된 것은 우리도 비슷한 식민지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리랑카는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 지배를 받으며 힘들게 살았던 싱할리족의 나라이다. 이 나라는 1505년 포르투갈 인들이 갈레지역 일부를 점령하면서 서양의 침탈이 시작되었다. 그 후, 1602년에 네덜란드인이 처 들어와서 포르투갈을 몰아냈고 다시 1795년 영국이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실론왕국을 멸망시켰다. 결국 스리랑카는 1948년에 영.. 2020. 11. 29.
물안개와 단풍이 어우러지는 섬 물안개와 단풍이 어우러지는 섬 한 향 순 올 가을은 유난히 가슴이 시리고 쓸쓸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오래 하다 보니 사람사이의 온기도 식고 자꾸 서운함과 허전함이 쌓이는 것은 나이가 든 탓 일게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가로수가 낙엽 되어 떨어지는 늦가을이 되면 달려가고 싶은 곳이 있다. 자욱한 물안개가 강위로 피어오르고 오색의 단풍들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가 되는 남이섬이다. 젊은 시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소풍을 갔던 곳을, 많은 세월이 흐른 몇 년 전부터 다시 찾게 된 것은 가을의 절경을 촬영하기 위해서이다. 섬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단풍이 드는 늦가을과 흰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섬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숲에는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많아 가을이 되면 색의 향연이 시작된 .. 2020. 11. 18.
메밀꽃 필무렵 메밀꽃 필 무렵 한 향 순 수그러들 것 같지 않던 더위가 물러나고 조석으로 선뜻한 바람이 부는 9월이 오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이효석의 소설 의 무대인 봉평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막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소설의 한 대목처럼 그곳에 가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십여 년 전,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는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 물레방앗간에서 기막힌 인연을 만날 것도 같았고 봉평장에서도 아는 얼굴을 볼 것도 같았다. 그만큼 소설 속의 이야기가 팩트가 되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 시절만 해도 감성이 풍부하여 이효석의 체취가 배어있을 것 같은 생가와 메밀꽃이 있는 봉평은 나를 흠뻑 매료시켰다. 더구나 소설의 한 대목처럼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 2020. 9. 16.
꽃사슴과 자연이 교감하는 섬 꽃사슴과 자연이 교감하는 섬 한 향 순 머리 위의 태양이 이글거리며 달아오르는 계절이 되면 시원한 바다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요즘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한적한 곳을 가고 싶을 때면 몇 년 전에 다녀온 섬, 굴업도를 떠올리게 된다.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리기도 하고 백패킹의 성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아직도 때 묻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섬을 찾아가는 길 조차 멀고 불편하다. 당일로 다녀올 수는 없고 인천 연안부두에 가서 덕적도에 가는 배를 타고 1시간 남짓 간 다음, 덕적도에서 굴업도행을 기다렸다가 다시 배를 갈아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다. 굴업도에는 조그만 마을에 열 가구정도 살고 있는데 교통편이라야 마을 이장님.. 2020. 7. 15.
소금이 온다. 소금이 온다. 염전 사람들은 소금 만드는 일을 반가운 손님을 맞듯이 ‘소금이 온다.’라고 한다. 바다의 속살을 넓은 벌판에 가두고 햇볕과 바람에 말리며 긴 시간을 기다려야 소금밭에 서서히 소금꽃이 핀다. 따가운 햇볕은 곡식만 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금도 익게 했다. 뙤약볕 아래 고통을 감내하며 천형(天刑)처럼 가래질하는 염부의 등짝에도 허옇게 소금꽃이 핀다. 평생의 천직이라 여기고 묵묵히 일하는 노인의 땀이 모아져서 영롱하고 굵은 소금이 영근다. 끝없이 반복되는 염부의 가래질에 바다의 기억이 조금씩 지워질 때쯤이면, 바다의 보석인 소금이 온다. 가장 덥고 고통스런 날에 가장 영롱하고 좋은 소금이 온다고 한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숨죽이며 고통을 겪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의 땀과 인내가 헛되지 않는다면.. 2020. 7. 12.